조선 개국의 주역 ‘정도전’의 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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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처, 주한아일랜드대사관, 캐나다 관광청 등이 입주해 있는 광화문 종로 한복판 현대식 건물에 왜 “利馬”라는 독특한 이름이 붙게 됐을까? 

그 역사는 6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利馬빌딩 터는 조선 개국의 주역 ‘정도전’의 집터 일부였다. 

조선의 개국 공신이자 서울을 만들고 기획한 인물, 정도전. 그런 그의 권세를 반영하듯, 정도전의 집은 육조대로 뒤편 조선시대 풍수지리상의 명당 터에 서당, 마굿간, 안채를 아우르는 매우 넓은 크기로 들어섰다. 

그러나 신권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태종 이방원에게 그는 처참히 죽임을 당했고, 그의 집 역시 흔적을 찾을 수 없도록 파괴됐다. 

그러나 ‘역사의 힘, 땅의 기억’은 참으로 질기고 강한 것. 정도전 집의 마굿간 터는 조선시대 궁중에서 사용하던 수레, 말, 마구, 목장을 맡아보던 관청 “사복시”가 되고, 정도진 집의 서당 터는 조선시대 영재들을 가르치는 “중학”이 되어 그 땅의 성격을 이어갔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500년이 흐른 일제강점기에도 땅의 역사는 계속 이어졌으니, 정도전 집 서당 터에 세워졌던 “중학”은 “수송국민학교”가 됐고, 마굿간 터의 “사복시”는 “경기도 경찰부 기마경찰대”가 됐다. 

그리고 해방 후, “경기도 경찰부 기마경찰대”는 “서울시 경찰기마대”로 편제됐다. 서울시 경찰기마대는 1950년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경찰의 주요 기동부대였다. 130필이 넘는 말과 150여명의 경찰관이 근무를 했으니, 당시 한 개 경찰서와 맞먹는 인원과 장비를 보유한 셈이었다. 

바로 이 서울시 경찰기마대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빌딩 이름이, 말을 이롭게 한다는 뜻의 “利馬”다. 600년을 이어오는 땅의 역사이자 시간의 힘이다. 

조선과 서울을 실질적으로 만들고 기획한 주역이었음에도 일찌감치 정적으로 제거당한 정도전. 그러기에 그는 조선시대에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했고 그가 설계한 서울에 그의 흔적도 거의 남아있지 않다. 

다만, 지금 정부 기관과 외국 대사관 등이 입주한 “利馬빌딩” 그리고 종로구청 앞 “삼봉길”만이 600년전 서울을 만든 정도전 그리고 600년간 이어져 온 땅의 기억을 역사도시 서울의 육조대로 뒤편에서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기사원문은 아래의 주소로 링크되어 있습니다.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2545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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